기술력은 시대를 막론하고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경쟁력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과 가격 전략도 비장의 무기가 될 수는 있으나 정교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를 따라갈 수는 없다. 지난 35년 동안 기어 전문 메이커로 단단한 입지를 쌓아온 에스엠지는 신속하게 고성능 제품을 생산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내는 고객 맞춤 기술력을 자랑한다. 광주첨단스마트 그린산단에 둥지를 틀고 세대교체를 마친 에스엠지는 글로벌 시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광주첨단스마트그린산단
정부는 기존 산업단지를 미래형 첨단산업 기지로 육성하는 스마트그린산단을 조성 중이다. 올해 1월 출범한 광주첨단스마트그린산단(이하 첨단산단)은 기존의 혁신자원을 활용해 자동차 전장, 복합 금형 중심의 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스마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개발 완료된 첨단1, 2지구에 이은 첨단3지구는 2025년까지 AI 기반 산업융합단지를 목표로 조성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생산과 고용 등의 측면에서 산업단지는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근간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든든한 버팀목임이 분명하다. 정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고 10대 중점 과제로 스마트그린산단을 선정했다. 한국판 뉴딜 추진에 있어 우리 경제 발전의 중추이자 주력산업과 일자리의 거점인 산업단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마트그린산단은 그 이름처럼 제조업 밀집 지역이자 에너지 다소비 지역인 산업단지를 디지털과 친환경이 융합된 미래형 제조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창원, 반월 시화, 남동, 구미, 여수, 대구 성서, 광주 첨단 등 총 7개 국가산업단지에서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광주첨단산단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및 스마트공장 도입을 통해 개별 기업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내 기관들과 협력해 제조 공정 혁신을 위한 지원사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첨단2지구에 부지를 받고 신축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성장했습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에스엠지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 무렵입니다. 입지 면에서 도심과 접근성이 우수하고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어 물류 이동도 편리합니다. 업종 제한 덕에 소음, 분진, 진동 등이 없어 우리처럼 초정밀 가공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점이 많은 편입니다. 쾌적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뿌듯합니다.”
임규철 대표가 공장 이전 당시를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1987년 삼미기어산업으로 시작한 에스엠지는 2013년 첨단2지구에 공장을 새로 지으면서 사명을 바꿨다. 각종 산업기계 및 동력전달장치의 핵심 부품인 정밀기어와 기어유닛을 전문으로 생산하며 명성을 쌓아왔기에 원래 사명의 영문 약자를 채택했다. 세계 시장의 문을 부지런히 두드린 결과, 대내외의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이고 있으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등 꾸준한 고용 유지와 창출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100년 장수기업을 위한 준비된 바통 터치
에스엠지가 부러움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찌감치 세대교체를 마치고 대를 이어가는 글로벌 장수기업으로 쾌속 성장 중인 까닭이다. 창업한 회사가 오래오래 장수하며 살아남는 것이 모든 기업인의 바람이지만, 안타깝게도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 CEO가 한둘이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대 창업자에서 2대 후계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업의 70% 이상이 실패한다고 한다. 이는 창업주가 물러나면 70% 이상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과 같다. ‘창업보다 수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임 대표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다. 학창 시절부터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한 것까지 합치면 훨씬 더 오래되었다. 자신의 뒤를 이어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충직히 배우고 익혔다.
“아버지는 20년 동안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셨습니다. 창업이란 비전을 가지고 착실히 기술을 익히고 사업자금을 모아 알짜배기 회사로 키우셨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임가공으로 시작했지만, 1990년대 접어들면서 정밀기어 쪽으로 사업 분야를 특화했습니다. 특히 기술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돈이 생길 때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설비 투자를 진행하셨습니다. 창업 당시에 들인 1호 기계를 지금까지 쓰는 것을 보면 아버지가 하신 모든 일이 다 이유 있는 욕심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의 설명처럼 창업주인 임경재 대표가 회사를 설립하던 당시만해도 국내 기어 가공업체의 기술력과 시장 환경은 많이 낙후돼 있었다. 정밀도나 내구성, 강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품질이 떨어져 중요한 부품은 일본이나 독일 등지에서 수입해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만큼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기술개발팀을 별도로 구성해 각종 기어 중에서도 물량이 적으면서 가격대가 높은 고급 정밀 부품을 주요 아이템으로 선정해 기술력을 응집시켰다. 1994년 화학공장 등지에서 널리 사용되는 폴리머 기어펌프를 시작으로 하나둘 국산화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받았다. 에스엠지가 생산하는 제품은 수입품과 질적인 차이가 없으면서도 가격은 20~30% 이상 저렴해 고객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납품 기한과 AS까지 정확해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현대위아, LG화학, SK케미칼, GS칼텍스 등 20여 개의 대기업과 거래를 맺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길이 열렸다.
“이제는 거꾸로 제품을 만들어달라며 찾아오는 고객사도 많아졌습니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중요한 부품이 파손되거나 마모돼 라인이 서면 큰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우리 회사 부설연구소는 자체 부품 설계는 물론이고 역설계도 가능해 그 어떤 기어 전문 메이커보다 빠른 시간 내에 긴급으로 부품을 생산해 차질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_ 임규철 대표는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1호 공작기계를 사용해 왔다. 2_ 에스엠지는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300여 개의 아이템을 생산한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AS로 바이어의 마음을 사로잡은 임 대표. 그 덕에 최소 5년은 넘게 거래해야 생길 법한 신뢰가 단 1년 만에 쌓였고, 발주 물량도 안정적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며 회사의 진짜 얼굴을 만들어낸 그는 신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물꼬를 처음 트는 것이 어렵지 한번 길이 나면 더 깊고 넓어지는 법이다. 에스엠지는 미국과 일본, 독일에 현지 영업망을 두고 판로를 탄탄히 다져가고 있다. 일례로 일본 오시코시(Oshkosh)사가 미군에 납품하는 합동경량 전술차량(JLTV)의 경우, 2016년부터 기술개발에 참여해 장기적으로 2030년까지 계약 물량이 확정돼 있다.
“외형 확장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튼튼하게 다져 세계 최고의 메이커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 좋은 품질, 좋은 신용이 뒷받침돼야겠지요. 또 무엇보다 좋은 인재가 있어야만 합니다. 한 명의 직원이 일당백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여건상 핵심 인재의 중요성은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직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복지정책을 실현하며 품질 관리 못지않게 인력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임 대표. 복지정책 중대표적인 것으로 월요일 1시간 늦게 출근하기, 2년 근속자 대상의 일주일 유급휴가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장에서 실무를 익히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마친 그가 수립하고 실천하는 경영전략은 옹골차다.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마친 기업이 100년 장수기업으로 성장하는 진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